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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라진 돼지 저금통
작성일 2024.06.28


사라진 돼지 저금통


파이낸셜뉴스 기고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깜짝 놀랐다. 신입직원에게 돼지저금통 얘기를 꺼냈는데, 처음 들어보는 눈치였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한 즈음부터 빨간 돼지 한 마리씩을 키웠다. ‘땡그랑 한 푼’이라며 저축 습관을 기르고 차곡차곡 목돈을 마련한다는 취지였으리라 생각된다. 얼큰하게 취하신 아버지의 노래신청을 만족시켜 드리고 1만원짜리 지폐를 받는 날은 돼지가 배부른 날이었고, 돼지가 무거워지기 전에 배를 살짝 갈라 딱지나 구슬 매입을 위한 개인 비자금(?)으로 쓰기도 했었다. 어찌됐건 저금통은 어린이들의 미래였다. 돼지 한 마리가 예기치 못한 일을 해결해 주는 보험금이 되었고, 대학 학자금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취업용 정장 한 벌을 사는데 보태기도 했다. 자녀가 사회 진출하는데 든든한 밑천이 되어 온 녀석이었다.

  지금도 빨간 돼지가 아이들의 미래가 될까? 보험금, 학자금, 취업준비금이라는 3대 밑천 외에도 돈 들어갈 곳이 많아졌다. 학원비로, 휴대폰과 인터넷 요금으로, 일자리 탐색, 주거마련 비용까지 이제는 수백마리의 저금통이 있어야 아이가 사회로 나갈 수 있다. 실제 한 보고서는 ‘자녀를 사회로 내보내기 위해 양육비 3억7천만원, 학자금 4천만원, 결혼비용 1억7천만원 등 총 6억원 이상이 든다’고 했다. 여기에 사교육비, 수도권 주거비까지 더하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소요될지 가늠조차 어렵다.

  저출생이 지구촌 이슈가 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초경쟁’사회가 되면서 사회진출의 예상비용은 커져만 가고 있는 반면 ‘저성장’ 뉴노멀로 미래 예상소득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무한경쟁의 어두운 미래에 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뜻인 듯 싶다. 실제 50년전만 해도 지구촌 출산율은 4.4명으로 인구폭발을 걱정했었는데, 최근(2022년) 2.4명까지 떨어졌다. 한국 역시 50년전 4.5명에 이르던 출산율이 이제는 0.6명대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각국의 정책 역량도 저출생에 집중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출산지원금이다. 상당수 나라들은 ‘아이 낳으면 지원금 드립니다’식의 정책을 펼치지만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먼저 6억원의 사회화 비용중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면 재정파탄은 시간문제다. 또 전세계적으로 신생아에 획기적 현금지원을 하지만 이들이 자라서 만들어 내는 사회적 가치는 훨씬 작다는 것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가지고 2세 키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먼저 경쟁압박을 줄여야 한다. 지금은 전국 일자리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모여 있다. 이 곳에서 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지난주 정부는 ‘정책대응 실기’ 등을 인정하며 일·가정 양립, 양육 부담 해소와 함께 그린벨트 지역에 출산가구 주택 공급, 청약요건 완화, 전세자금 대출 완화 등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자 하고 있다. 0세부터 11세까지 육아 경쟁을 벗어날 퍼블릭 케어도 눈여겨 볼 만하다.

  다음으로 저성장 뉴노멀을 넘어설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 성장이 이루어지면 그만큼 일자리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AI, 로봇, 반도체, 바이오, 우주항공 등의 첨단분야의 일자리라면 더 환영이다. 이같은 4차 산업혁명은 청년 1명이 노인 여러명을 부양해야 하는 연금부담도 줄여줄 것이다. 여기에 저출생을 예정된 미래로 받아들이고 주니어들의 미래 부담은 감소시키면서 시니어들의 현재 생산 역량도 제고시키는 지혜도 필요해 보인다.

  다음달 11일이 인구의 날이란다. 지구촌에 50억명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정부는 퍼블릭 케어, 연금개혁, 교육개혁이라는 돼지저금통을 마련하고, 기업들은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국민들은 ‘아이가 미래’라는 긍정의 마인드로 돼지저금통을 채워나가면서 매년 빵빵한 인구의 날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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